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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move into somewhere>:고사리  (2018)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이야기 11호

- 우리 동네 전시를 소개합니다|글 차정미

100년 된 채동선 가옥을 만나다

작년 어느 가을 저녁이었다. 찻집 마로다연을 찾다가 들어선 골목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집을 발견했다. 담장 너머로 본 그곳은 마치 작은 숲처럼 나무에 둘러싸여 있었고, 그 사이로 넓은 마당과 일본식 양옥이 보였다. 성북동에 이런 곳이 있었나? 여긴 대체 어떤 곳일까?

 

지난 2월, 고사리 작가가 성북동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전시하게 될 곳으로 찾아가보니, 내가 궁금해 하던 바로 그 집이었다. 이 집은 일명 ‘채동선 가옥’으로 알려져 있다. 가곡 ‘고향’의 작곡가 채동선이 1930년대에 성북동에서 살았을 때의 집이라고 한다. 그는 정지용의 시 8편에 곡을 붙여 가곡의 역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년 채동선을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 ‘183의 17’을 통해 처음 그를 알게 되었는데, 이 집이 그가 살던 집이라니 또 한 번 놀랐다. 채동선은 3.1운동에 참여했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는데, 당시 큰 부자였던 아버지가 손을 써서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창씨개명을 끝까지 거부했고, 일제의 압박 속에서 잠깐 음악을 그만두고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러다 6.25 전쟁 때 피난 간 부산에서 죽었다. 그 이후 성북동 집도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고, 2006년부터는 빈집으로 있다고 한다. 

고사리 작가의 두 번째 <이사> 프로젝트 

고사리 작가는 <이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빈집을 비닐로 감싸는 설치작업으로 작년에는 재건축이 예정되어 철거를 앞둔 가정집(강서구 등촌동)에서 전시를 했다. 두 번째 <이사>프로젝트는 성북동183-17(채동선 가옥)에서 3월31일부터 4월15일(연장되어 30일)까지 진행되었다.

“프로젝트 <이사>는 공간이 가지는 사유와 소유의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이사>는 곧 재건축으로 사라질 집에 관한 이야기였고, 이번 두 번째 <이사>는 비어있는 채로 오래된 집에 관한 이야기예요. 이 집은 100년의 세월이 담긴 집이며, 12년간 멈춰진 시간을 간직해온 집이에요. 누구라도 마음을 내어줄 만큼 멋진 곳입니다.”

 

<이사> 프로젝트를 시작한 계기

고사리 작가는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전시를 준비했다. 집 안과 마당을 치우고, 비닐로 집을 싸기 시작했다. 2층집과 문간방까지 그 큰 공간에 천장과 바닥은 물론 전선줄, 문고리 하나하나 모두 비닐로 감쌌다. 참 힘겨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이사>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 되었을까.

“작년, 우연히 곧 재건축이 이루어질 가정집에서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어요. 그 집에는 얼마 전까지 한 가정이 살고 있었고. 가족들이 떠나고 없는 빈 집에는 온기가 남아 있었어요. 고스란히 살아있음을 드러내는 공간은 한 달 뒤면 사라질, 죽을 날을 받아둔 상황이었지요. 그 만남은 이제까지 제가 살아왔던 집에 대한 수많은 관계들을 떠올리게 했어요.” 

작가의 어머니는 여인숙을 운영하고 있다. 작가는 유년시절을 여인숙 다락방에서 보냈다. 그 집은 작가와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자, 어느 누구의 집이기도 했다. 건축가인 작가의 아버지는 물건을 모으는 ‘저장강박증’이 있어, 생활이 불편할 만큼 집안을 물건으로 가득 채웠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곧 사라질 집을 만났을 때 작가는 여러 감정이 들었고, 이것이 곧 작업으로 이어졌다. 

작가는 왜 비닐 소재를 골랐을까

공간을 겹겹이 싼 비닐은 바람에 나부끼기도 하고, 사람이 지나가면 바스락 소리도 낸다. 비닐은 다양한 감각으로 공간을 느낄 수 있게 한다. 

“2009년부터 1년 반 동안 집에서 생겨나는 쓰레기들을 기록하는 작업을 했어요. 비닐에 무언가를 담아 보관하는 행위에서 현 시대의 소유 방식을 짐작해 볼 수 있었지요. 사소하고도 중요한 무언가를 비닐에 담아 보관하듯, 그 집에서 느끼는 기억과 감정들을 담는다는 의미에서 집을 비닐로 싸맸다고 볼 수 있어요.”

작가는 한 관람객의 이야기를 인상 깊게 기억하고 있다. 이번 전시 때 두 차례 방문해 주신 어떤 분이 있었어요. 그 분은 전시를 보고 집에 돌아가 집안에 있는 모든 비닐들을 한곳에 모아 보았대요. 필요로 인해 구입하기도 하고, 편리함 때문에 물건을 비닐에 담았는데 기억조차 못하는 것들이 많아 놀라셨나 봐요. 비닐 안에 남겨진 물건처럼 마음 안에 꺼내지 못한 말들 역시 많다는 것을 깨달았대요. 그 후 그 마음을 하나씩 꺼내어 가까운 분들께 건네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요. 그 관람객은 비닐에 담겨진 것들을 통해 마음까지 들여다보게 되었다는 말을 전했다. 작가에게는 이 말이 큰 선물이었을 것이다. 나처럼 전시 덕분에 이 공간을 알게 된 사람들도 많았다. 긴 시간 이 골목에서 사신 분, 우연히 지나치다가 들른 분, 신나게 마당에서 뛰어놀다간 꼬마 아이들, 불편함에 선뜻 전시장에 발붙이기 어려워했던 분들까지.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과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 좋았다고 한다.

 

집과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것

맑을 때, 흐릴 때, 비가 올 때, 바람이 불 때… 전시하는 동안 시시각각 변하는 전시장의 모습을 보는 건 어땠을까.

“12년 간 비어있던 집은 사람이 살지 않았을 뿐, 먼지와 곰팡이, 부서진 가구와 내려앉은 천장들은 그곳이 여전히 살아 있다고 말해주고 있었어요. 오랜 시간 방치된 것들의 모습이 아닌 존재 자체만으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비닐로 인해 더 가깝게 다가가 들여다보고 만져보면서. 바람이 내는 소리와 내 걸음소리가 비닐을 통해 나듯이 집과 내가 함께 살아있음을 느낄 수도 있지요.”

 

살아있는 고향집

전시 <이사>를 보면서 얼마 전 헐린 고향집이 떠올랐다. 그 집은 할아버지가 지은 한옥 집으로 70년이 넘은 우리 가족의 역사가 담긴 곳이었다. 안타깝게 도시계획에 따라 허물어졌지만. 지난 2월 마지막으로 집을 둘러보았을 때 지붕은 뜯겨졌고 문은 부서져 있었으며, 마루와 안방, 마당에는 흙더미와 쓰레기가 한데 엉켜 있었다. 누가 봐도 황폐한 집이었지만 내 눈에는 우리 가족이 아직도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뜯겨진 집이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마당 담벼락에 걸려있던 옥수수, 제비가 앉아있던 전선, 쪽마루를 딛고 드나들었던 다락방, 할머니가 오강을 부시던 우물가, 어머니가 화장품을 두었던 부엌 찬장, 아버지가 결혼 선물로 친구에게 받았던 거울… 내가 살았던 공간에 함께 있었던 사물의 이름이 이렇듯 길어진다. 나는 사라진 공간을 떠올리고 ‘살아있음’을 확인한다.

 

이 전시는 사람이 떠나간 공간을 위로하는 것 같다. 공간을 위로한다는 것은 공간과 사람이 서로에게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건 아닐까? 내가 살았던, 살아갈, 그곳을 떠올려보면서. 공간에게 위로를 받은 내가, 공간을 위로하는 이곳에서 다시 고향집을 부른다. 공간이 먼저 사라지든, 다른 공간으로 내가 먼저 사라지든, 내가 살았던 공간은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집이 없어져도 여전히 마음엔 그 집이 살아있는 것처럼. 우리는 사라지고,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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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11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8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8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8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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