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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과 남은 것 (2017) _ 고사리 개인전 <살아내는 시간>

 

-함성언 (갤러리 버튼 대표)

고사리는 ‘집적’과 ‘수집’을 다양한 형태로 진행한다. 그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물건들을 모아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고 재구성하지만 일상적이고 평범한 물건의 의미는 단순히 작가 개인의 역사의 수집에 그치지 않는다. 평범함이 얻을 수 있는 비범함은 확장성에서 비롯되며, 고사리의 작업이 가진 확장성은 작가의 일상이 세대와 시대를 반영하고 있음에서 시작된다. 지방 출신 유학생의 삶은 짐작이 가능하고, 그것은 어느 한 사람의 삶의 방식, 형태는 아닐 터다. 작업의 소재가 된 소비의 흔적은 결국 흔하고 평범한 일상이 남긴 발자국이다. 고사리의 작품에서 작가의 이름을 지우고 또래 누구의 이름을 적어 놓아도 작업의 형태와 의미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며, 그는 그렇게 작업을 통해 거울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재건축이 예정된 등촌동의 연립주택에서 2017년에 발표된 작품 ‘이사’는 2004년부터 진행된 작업의 총합편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어느 가족의 삶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집 안으로 들어간 그는 물건이 빠져나간 집 안을 비닐로 포장하기 시작한다. 바닥과 벽, 천장은 물론이고 문고리와 손잡이까지 꼼꼼하게 포장된 집 안은 시간이 정지된 공간이 된다. 누군가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공간을 비닐로 포장한 고사리는 작업노트에 ‘염(殮)을 하는 마음’이었다고 적었다. 살던 이들이 떠나고 이제 공간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여긴 작가는 공간에게 ‘보내는 의식’을 치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의도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고사리의 <이사>는 수집을 근간으로 한 기존 작업들의 연장선에 서 있다고 여겨진다. 다만 수집의 대상이 형태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소비의 흔적들을 모으고, 촬영하며 만든 기존 작업들이 유형의 수집이었다면, <이사>는 아예 공간 자체를 포장해버리는 것으로 그 안에 축적된 ‘숨과 시간’을 수집하는데 성공한다. 비닐이라는 소재는 물과 바람을 차단하기 유용한 소재다. 비닐로 집 안을 포장하며 외부의 흐름(바깥의 공기와 소음,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내뱉는 숨들)과 차단시킨 작가는 반대로 오랫동안 집 안에 남아있던 삶의 흔적과 쌓여있던 시간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것도 차단시킨다.

관람객들은 집 안에 들어가며 지금은 비어있는 집 안이지만 마치 남의 삶의 공간에 침입한 것처럼 조심스러워지는데, 이것은 재건축이 예정된 빈 집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출입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다. 차단된 집 안은 본 적 없는 이들이 남긴 시간이 쌓인 공간이고, 관람객은 아무도 없는 집 안에 들어가며 불청객이 되어버린다. 마치 허락도 없이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는 침입자의 모양새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바스락거리며 흔들리는 비닐은 얌전히 쌓여있던 옛 주인의 육화된 시간이 쌓인 공간에 생긴 작은 균열이다. 익숙할 수 있던 것들이 설치 방법과 작업의 소재를 통해 낯설게 여겨지게 만든다. 고사리는 비닐 포장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오랜 삶의 흔적을 수집해 관람객들에게 공개한다. 수집된 것들에 외부의 개입을 허용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한 데 모으고, 다른 숨과 시간을 채집한다.

 

고사리의 작업들은 대체로 삶의 흔적을 수집하고 그것을 눈에 띄는 가공 없이 한 데 모아 보여주는 특징을 가진다. 수집된 것들은 각각의 이미지를 갖고 있거나 개별적인 인과와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을 모아 놓으면 연결된 내러티브를 찾기 어렵다. 오늘은 무엇을 샀고 어제는 무엇을 먹었는지를 알려주는 쓰레기들과 누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없이 비닐로 포장해버린 집 안에서 굳이 이야기를 찾을 이유도 없다. 마치 워홀의 영화(엠파이어, 1964)를 연상시키는 내러티브가 없는 이미지들의 집적이다. 시간의 흐름과 인과를 알 수 없는 사건의 수집이 주는 효과는 낯섦이다. 그의 작업이 가진 미덕은 익숙한 이미지들로 대표성을 획득하며 동시에 내러티브 없이 던져진 이미지가 주는 낯섦이 공존하는 것에 있다.

전시장 한 가운데 매달린 비닐조각들이 만든 공간은 소재도, 형태도 익숙하다. 그러나 그 익숙함은 작품을 외부에서 바라볼 때뿐이다. 비닐을 헤치고 작품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관람객들은 사방에서 사그락대며 비닐이 부딪히는 소리와 안개 속처럼 좁아진 시야를 경험하게 된다. 직전까지 당연하고 익숙하던 전시장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인식과 지각의 변화다.

하루에도 몇 번은 만지고 보게 되는 물건이 만든 공간은 이제까지 한 번도 겪고 느껴본 적 없는 곳이 되고, 시간의 흐름마저 낯선 공간 안에서 헤매는 동안 당연하게 혹은 일상적으로 인식하던 의미들이 변하는 순간 우리는 익숙한 인식과 이성의 세계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더 깊이 숨어있던 세계에서 지각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무의식이 의식의 단서가 되는 순간이다.

 

고사리의 작업에서 향수나 연민에서 비롯된 따뜻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기본적으로 그는 변화의 과정에 휘말리며 사라지는 것들과 남아있는 것들을 관찰하고 수집하여 작품으로 재현한다. 더불어 바라보고 개입하되 그것이 차갑고 날카로운 비판으로 여겨지는 것을 저어하는 마음이 작품 곳곳에서 느껴진다. 단 그의 작품이 가진 미덕이 그 따뜻함에 머무는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비닐로 포장된 집 안과 비닐 조각들로 만든 공간에서 느끼게 되는 이질감은 어떤 흐름의 멈춤 때문이라 여겨지는데, 이 ‘멈춤’이 일어나는 순간 지각하게 되는 뒤틀림과 낯섦은 일상의 공간과 평범한 사물 한가운데서 발생하며 더욱 극적으로 여겨진다. 그는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순간을 잡아, 그 한 가운데 우리를 세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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