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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서울문화재단 최초예술지원 현장평가 결과

 

-전문평가위원

 

고사리 작가는 작업의 초기 때부터 버려지고 방치되어 온 사물과 장소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번 개인전 《프로젝트 이사》는 작가가 기존에 한 재개발 지역의 연립주택에서 선보인 2017년의 《이사》 전시를 환기시킨다. 오랜 시간동안 방치된 건물의 내부를 벽면, 바닥, 천장과 더불어 건물에 존재하던 사물들의 존재까지도 일일이 비닐로 감싸는 그의 작업은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없는 장소와 삶을 일시적으로 패킹, 혹은 밀봉시켜 우리의 눈앞에서 생생히 드러낸다.

기존의 작업이 철거 예정인 건물에서 생성과 파괴의 틈에 개입하여 한시적인 시간의 존재를 감싸 극대화시킨 반면, 이번의 《프로젝트 이사》는 오랜 시간 동안 세상으로부터 방치되어 있던 공간의 존재를 감싸는 동시에 이 공간의 존재를 세상에 열어 젖혀 보인다. 성북동의 한 폐가를 방문한 관객들은 근 10년간 알려지지 않았던 방치된 공간의 비밀스런 시간을 촉각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전체적으로 비닐에 쌓여져, 걸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바닥의 소리는 마치 공간이 침묵해온 웅성거림, 내밀한 음성과 같이 관객들의 방문과 그 움직임에 반응해 보인다. 반투명한 비밀을 통해 비치는 공간의 표면에는 시간에 닳은 공간의 물성과 훼손된 자국들이 가득하다. 이러한 낡은 물성을 조심스레 내비치는 비닐의 반투과성 또한 주목할 점이다. 공간(건물)과 신체(관객) 사이에 단절된 간극에 개입하여 이를 소통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반투명한 비닐로부터 비치는 공간의 표면에는 곰팡이, 낙서, 훼손의 흔적, 손상 등 여러 시간이 흔적들이 구분 없이 그대로 담긴다. 시간의 레이어를 유심히 들여다보게 하면서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기에 관객들은 유심히 반투명한 비닐 너머의 리얼리티를 응시한다. 관객과 건물 사이의 비닐은 존재할 수 없는 시간을 관객에게 연장시키는 매체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은 일상-폐허 사이에서 보이지 않던 삶을 매개하는 중간자적 매체로, 방치된 삶의 시간과 장소를 현실로 다시금 불러일으킨다.

현실의 가치와 속도로부터 방치된 삶의 장소를 보듬어 이를 생생한 지금의 시간으로 패킹해 보이는 그의 작업은 동시대로부터 폐기된 무수한 존재들이 여전히 우리 삶 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지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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