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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의 '이사' 방문기 _ 류병학

지난 목요일 성북구를 찾았다. 고사리 개인전 <이사(move into somewhere)>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전시장소는 갤러리가 아닌 주택이었다.
따라서 고사리는 웹 초대장에 전시장소로 주소를 적어놓았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183-17번지

친절하게도 고사리는 웹 초대장에 ‘찾아오시는 길’도 기술해 놓았다. 고맙게도 고사리는 지하철역부터 찾아오는 길을 안내해 놓았다. 난 고사리가 말한대로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에서 하차했다. 난 6번 출구로 나와 300미터 직진했다. 고사리가 말한 대성정육정이 나타났다. 난 그곳에서 우회전을 했다. 내가 CU편의점과 옛날중국집을 지나니 고사리가 말한대로 분홍색 상점이 나타났다. 반가웠다. 난 분홍색 상점을 바라보면서 상점 왼편으로 나있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골목길에서 갈라지는 담에 ‘마로다연’ 표지판이 보였다. 난 화살표 방향으로 따라갔다. 막다른 골목길에 다다르니 우측에 대문이 부재하는 주택의 입구가 나타났다. 그 문 없는 입구로 들어가니 아담한 정원이 맞이한다. 정원에는 테이블과 의자들이 비치되어 있다. 그 정원이 있는 주택은 이층집이다. 난 일단 빈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난 신발을 벗고 마련되어 있는 슬리퍼를 신었다.

 

오! 집안이 온통 비닐로 포장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테면 고사리가 방바닥에서부터 벽면 그리고 천장까지 비닐로 ‘도배’를 해놓았다고 말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는 벽면의 유리창과 천장의 샹들리에 조명까지 감싸놓았다. 어디선가 ‘바스락’ 소리가 들린다. 난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귀 기울이기 위해 걷기를 멈추었다. 내가 멈추어 서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닌가. 잘못 들었나? 난 걷기를 다시 했다. “바스락!”

 

아~ 내가 걸을 때 슬러퍼와 비닐이 마찰해 나는 소리였다. 거실과 안방 그리고 부엌 또한 화장실도 모조리 비닐로 ‘도배’되어 있었다. 물론 고사리는 안방의 장이나 부엌의 가구 그리고 화장실의 변기도 비닐로 감싸놓았다. 어느 방 벽에는 쪽지가 부착되어 있었다. 그런데 비닐로 가려져 무슨 쪽지이니 불분명했다. 그래서 비닐을 쪽지에 밀착시켜 보니 음식 전과 음식 후에 하는 기도문이 적혀있는 것이 아닌가. 아마 그 방은 식당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계단을 오를 때마다 나무의 감촉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마치 낙엽을 밟는 소리처럼 들린다. 2층에 올라서니 거대한 화장대가 있는 방이 등장한다. 그 방에는 유리창이 열려져 있었다. 난 유리창을 통해 정원을 내려다보았다. 오잉? 내가 유리창에 서있는데 어디선가 ‘사사삭’거리다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이 빈집에 나 말고 다른 누군가 있단 말인가? 오잉? 벽면을 감싸고 있는 비닐이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에 ‘몸’을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 소리는 다름아닌 집안으로 불어온 바람에 의해 사방의 비닐들이 서로 속삭이는 소리들이었다.

난 집 밖으로 나와 집 주변을 둘러보았다. 지하 창고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창고 내부를 바라보니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그리고 집 뒤편에도 창고가 있었는데 각종 가구들과 쓰레기들이 차 있었다. 그리고 정원에도 밥그릇에서부터 각종 플라스틱 용품들 그리고 기왓장들과 깨진 거울이 담벼락에 기대어져 있었다. 헉!!! 그렇다면 고사리가 빈집의 방들을 비닐로 ‘도배’하기 전에 방 청소를 한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이 빈집은 언제부터 방치된 것일까? 고사리의 답변이다.

“성북동-183-17번지 집은 1세대 작곡가 채동선 씨가 1920년대에 지어 사셨던 집이었고, 6.25에 피난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지금은 작고하신 이화여대 김용서 교수님의 가족들이 그 집에서 2005년까지 사셨고, 집안의 물건과 흔적들은 모두 그 가족들의 흔적입니다. 따라서 12년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았던 곳입니다.”

12년 동안 방치된 집이라면 ‘폐가’라고 할 수 있겠다. 폐가를 방문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장난 아니다. 난 고사리에게 처음 폐가를 방문하셨을 때 상황은 어떠했는지 물었다. 그녀의 답변이다.

“제가 처음 방문했을 때는 지난 2월이었습니다. 마당에 쓰러져 있는 나무들과 실내에 남겨진 가구와 집기들, 비가 새고 오래되 내려앉은 바닥과 천장, 먼지와 곰팡이들이 숨을 쉬거나 피부에 무엇이 닿을까 걱정이 되는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말만 들어도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다. 고사리는 집안을 비닐로 ‘도배’하기 전에 엄청난 노동을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녀는 지난 2월부터 마당과 실내의 대대적 철거와 청소를 진행했다고 한다. 이후 그녀는 그 빈 집을 비닐로 감싸놓았던 것이다. 당신이 고사리의 <이사> 프로젝트를 직접 방문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엄청난 노동’이란 단어를 실감하게 될 것이다. 2층의 폐가 내부를 청소한다는 것도 장난 아니지만 2층 내부를 모조리 비닐로 감싸놓는다는 것 역시 장난 아니다. 실내의 쓰레기 양 뿐만 아니라 먼지와 곰팡이 그리고 때의 양 또한 비닐의 양만 떠올려도 현기증이 날 정도이다. 어떻게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그 엄청난 작업을 혼자 감당할 수 있었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고사리의 작업은 뜨거운 애정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뜨거운 애정의 발로는 무엇일까?

고사리는 <이사> 프로젝트를 이미 작년부터 행했다. 그녀는 재건축이 예정되어 철거를 앞두고 입주민이 이사를 나간지 6개월이 넘은 빈 집인 일년만미슬관 가정집 101호(서울시 강서구 등촌 1등 643-71번지) 내부를 모두 비닐로 감싸는 설치작업을 했다. 당시 고사리는 <이사> 프로젝트를 작업노트에 ‘염(殮)을 하는 마음이었다’고 적었다. 고사리는 마치 죽은 사람에게 습(襲)과 염(殮)을 행하듯 ‘죽은 집(폐가)’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깨끗이 씻어낸 다음 비닐로 감쌌던 것이다.

머시라? 왜 고사리는 ‘죽은 집’을 베나 무명이 아닌 비닐로 감쌌느냐고요? 그 점에 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2009에서 2011년 사이 1년 7개월간 집에서 생겨나는 쓰레기들을 일기처럼 매일 촬영한 기록 작업(버려지는 일기)을 하였는데, 그동안 가장 많은 수와 양을 차지하는 것이 비닐이었습니다. 무엇을 담는 용기가 나무와 유리, 스테인레스, 플라스틱을 지나 가장 가볍고, 저렴한 비닐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난 고사리의 <이사> 프로젝트가 일종의 ‘초혼(招魂)의식’으로 느껴졌다. 왜냐하면 흔들리는 비닐 소리나 걸을 때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나의 귀에 마치 ‘숨(Breath)’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 점에 관한 고사리의 육성을 들어보자.

“사람에게 소유나 소비의 형태는 공간이든 사물이든 물리적으로 이동하게 되고, 비 물리적인 형태로 욕망이나 집착 같은 것들이 더해져 이동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방식으로 공간과 사물을 취하는 형태를 비닐로 싸매는 행위로 제 안으로 이동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관람객은 저의 작업을 감각하고 경험하여, 각자의 형태로 이동해 작동되어질 거라고 봅니다.”

고사리는 인간이 떠난 빈집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정성스럽게 비닐로 하늘로 올라가는 혼(魂)을 백(魄)에 머무르게 하기 위해 초혼의식을 치른다. 혹 그녀는 인간뿐만 아니라 집 역시 혼과 백이 결합해야만 생명이 유지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고사리는 버림받은 빈집을 받아들여 함께 한다. 그녀의 <이사>는 작가적 욕망을 내려놓고 빈집과 함께 하는 것이다. 그녀는 우리에게 빈집과 함께 쉬어가길 권한다. 고사리의 착한 마음 고운 마음이 읽히는 대목이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183-17번지 고사리 개인전 <이사>는 4월 30일까지 전시된다.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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